머신러닝AI2026. 5. 25. 02:27

 Andrej Karpathy가 주장한 이후로, LLM Wiki라는 방법론이 확산되었다. 개념 자체는 단순하다. 내가 어떤 원천 정보를 확보하면, 그것의 메타 정보를 LLM을 이용해 정리해주며 문서를 저장해나가는 것이다.

 

 이를 테면 그 문서가 어떤 내용인지 요약본을 확보하고, 무엇을 다루는지 분류하고, 기존 어떤 문서가 연결되어 있는지 등을 같이 정리한다. 그리고 지식이 필요할 때가 되면 그 메타정보와 그리고 필요시 원본을 읽어가며 소유주의 질문에 답하면 된다. 그리고 이 작업은 LLM이 진행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사실 방대한 문서를 AI로 다루기 위한 RAG라는 기존 방법이 있지만, 이 RAG는 아쉬움이 많았다. 단지 검색을 확장한 개념이었기 때문에, 중간에 놓치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LLM Wiki는 필요한 것들에 대한 메타 정보를 LLM이 생성해주기 때문에, 이러한 소실이 훨씬 줄어든다. 물론 대신 토큰을 많이 생성하고, 속도는 더 느리다. 마치 대리하는 사람이 직접 정보를 뒤져 찾아주는 듯한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될까? 여기서는 claude code는 설치되었다고 가정하자.

 

 1) LLM Wiki의 저장소 역할을 할 Obsidian을 설치해준다.

 

Obsidian은 맥과 윈도우 모두를 지원하는 무료 툴로, 온라인 sync가 필요할 시에는 유료다. 하지만 무료 기능으로 충분하다. Obsidian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md(마크다운, AI와 인간이 읽기 쉬운 약식의 문서 형식이다)형태로 문서를 저장하고 관리하는 툴이라고 보면 된다. md에 기반하는 LLM 도구들과 딱 어울리며, 여러가지 문서들을 열람하고 조회하며 시각화하는 기능도 제공해준다. 본래는 개인 노트나 자료를 정리하는 툴이었지만, md형식의 Wiki역할도 충분히 해낸다.

 

2) Obsidian CEO가 직접 만들었다는, Obsidian을 이용하는 skill을 설치한다.

 

 https://github.com/kepano/obsidian-skills 에 설명을 들을 수 있고, 설치는 다른 claude code plug-in과 다르지 않다.

 

claude code를 설치한 후 아래와 같이 입력하여 설치하자.

 

/plugin marketplace add kepano/obsidian-skills
/plugin install obsidian@obsidian-skills

/reload-plugins

 

3) 내가 모은 자료를 한 폴더에 모으자.

 

본인같은 경우에는 claude code로 지시하여 알렌의 아카이브 사료와 다양한 조선말기 외국인의 원문 자료를 모았다. 윤치호 일기나 당시 외교관 및 외국인들의 기록, 그 시기 승정원일기, 베베르의 기록 등도 마찬가지다.

각종 문헌을 모았다.

 

4) claude code에 LLM wiki (사실은 Obsidian Vault)구성을 지시한다.

 

이때는 기존에 소개한 revfactory harness plug-in을 사용한다.

 

   a. 미 설치하신 분들은 아래와 같이 설치한다.

 

   > /plugin marketplace add revfactory/harness

   > /plugin install harness@harness (오류시 harness@harness-marketplace)

   > /reload-plugins

  

  b. claude code에 하네스를 구성하고 실행한다.

   

   > /harness wiki llm이라는 방법론으로 obsidian의 vault형태로 만드는 하네스를 구성해줘. xxx 폴더에 있는 구한말 역사 원본들을 하위디렉토리까지 탐색해서, 최근 설치한 obsidian skill을 사용해서 진행해. 인물관점으로 잘 정리하고, 용어는 한글을 중심으로 적어주되, 내부적인 다국어 읽기/쓰기 변환 원칙을 마련해서 일관되게 진행하고 다국어를 다룰 수 있게 준비해.

 

   > vault 구성을 진행해

 

 c. 특정 folder에 vault 구성이 완료되고 나면, 이제 질문하고 싶은 것을 claude에 묻는다. 나중에는 vault가 구성된 폴더를 명기해서 질문할 수도 있다.

 

  > vault로 구성한 정보를 바탕으로 아래 질문에 대답해줘
      "질문을 적어서 묻는다."

 

5) 위 "질문"에 대한 답변 예시는 아래와 같다.

 

아래 답변을 통해서, 이 LLM Wiki가 상당한 수준임을 알 수 있었다(Opus 4.7). 개인적으로는 역사학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사료를 수기로 뒤지던 것에서 훨씬 더 나아갈 수 있고, 다국어 지원도 쉬우며, 무엇보다 각국 사이트의 정보 모으기도 쉽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과의 매칭도 훨씬 더 쉬워지리라 생각된다. 역사학계는 이제 도서관 사료를 모두 LLM Wiki로 정리하고 조회/검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a) 박정양의 미행일기에서는 청나라의 압력을 피해서 미국 대통령을 만나는 자주 외교를 행한 것처럼 묘하게 기술이 되어 있고, 선교사 알렌의 기록에는 자신이 사임하겠다고 압박하며 박정양이 청에게 의존하려는 것을 막았다고 적혀있어. 어느 것이 진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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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발췌

6. 두 사료의 시각 충돌 — vault가 확인 가능한 한계 내에서의 정리
항목: 청 공사 동행 알현 시도 시점
박정양 米行日記 (사용자 진술): (vault 미확인)
알렌 Things Korean (vault L6206-23): 워싱턴 도착 후 청 공사가 종속국 사절로 소개하겠다고 선언
────────────────────────────────────────
항목: 박정양 본인의 의사
박정양 米行日記 (사용자 진술): "처음부터 청을 배제하기로 결정" (행위주체 = 박정양)
알렌 Things Korean (vault L6206-23): "the demands as well as the persuasions of the Chinese minister that we consent to be
introduced by him" — 청 공사의 "권유(persuasions)"가 박정양에게
통하려던 정황 시사. 박정양은 흔들렸다고 읽힘
────────────────────────────────────────
항목: 단독 알현 결정 행위자
박정양 米行日記 (사용자 진술): 박정양 본인
알렌 Things Korean (vault L6206-23): "it became my duty to defeat" → 알렌 본인
────────────────────────────────────────
항목: 사임 카드
박정양 米行日記 (사용자 진술): (vault 미확인)
알렌 Things Korean (vault L6206-23): 알렌이 본인 사임을
alternative로
던짐
────────────────────────────────────────
항목: 사후 책임 부담
박정양 米行日記 (사용자 진술): (vault 미확인)
알렌 Things Korean (vault L6206-23): 알렌이 책임 문서 작성해
박정양에게 들려 귀국시킴
────────────────────────────────────────
항목: 귀국 후 처벌
박정양 米行日記 (사용자 진술): (vault 미확인)
알렌 Things Korean (vault L6206-23): "the returned minister was
banished" (L6223, X장) / "for one day to appease Mr. Yuan"
(L2584-86, Chronological Index)
7. 사료 비판학적 평가
알렌이 Things Korean을 출간한 1908년은 박정양이 사망(1905-12-15)한지 3년 후로, 박정양의 반론이 더 이상 불가능한 시점입니다. 이 시점에
알렌이 본인을 행위 주체로 기술한 것이 (a) 사실 그대로인지, (b)
1908년 시점 미국 내 알렌 본인의 외교사적 공적을 강조하려는 자기
변호인지는 사료 단독으로 판정할 수 없습니다 — 박정양 米行日記
본문과의 직접 대조가 필수입니다.
다만 vault에서 검증되는 한 가지 사실: 알렌의 회고는 (1) 청 공사가
종속국 사절 소개를 강요했다는 객관적 정황 + (2) 박정양이 그 강요와
권유 사이에서 흔들렸을 가능성 + (3) 알렌이 자기 사임을 카드로
던졌다는 행위 + (4) 박정양 귀국 후 1-3일 귀양이라는 처벌의 4가지
사실의 연결 고리를 일관성 있게 제시한다는 점입니다. 박정양
米行日記가 같은 사건을 박정양 본인의 결단으로 단순화했다면, 그것은
외교 회고록의 동시대 표준 — 본국·왕에 대한 보고용 자기 책임화 양식일
가능성이 큽니다(사절단장이 외국인 비서에게 외교적 결단을 양도했다고
적으면 본국에서 처벌·면관 사유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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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알렌이 조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상당히 챙겼다는 비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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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발췌

 

vault 사료를 정밀히 보면 이 비판은 동시대 한국인 1차 사료(특히 윤치호)에 의해 직접·반복적으로 입증되며 거의 반박할 수 없다. 다만

"자기 이익"의 층위를 구분해야 정확하다. 단순한 사적
치부(corruption)였다기보다, (a) 미국 국익의 외교관, (b) 알렌 본인의
외교관 경력 자산, (c) 미국 자본가들의 이권 중개자 — 이 세 층위가
분리되지 않은 채 작동했다는 점이 본 vault 사료가 가리키는 정확한
비판의 형태다. 단계별로 풀이.
1. 비판을 뒷받침하는 1차 사료 — 동시대 한국인 직접 증언
(a) 윤치호 1898-01-23 (서재필과의 대화) — 가장 결정적 좌표
▎ [!quote] [[sources/dairy/yun-chiho/translation/v05_1897-1902_trans
▎ lation#L201]]
▎ "알렌 박사가 치료나 선교 목적으로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 말해주었다. 알렌 박사에게는 정직한 사람이 아니라 미국의 이익을
▎ 증진하는 데 도움을 줄 사람이 필요한데, 3명의 이 씨에게서 자신이
▎ 원하는 도구를 발견한 것이다."
이 한 문장이 사실상 본 vault에서 알렌에 대한 비판 라인 전체의
원점이다. (i) 의료·선교 명목은 1898 시점에 더 이상 그의 실제 활동의
설명이 되지 않는다, (ii) 그가 한국인 협력자를 선택하는 기준은
"정직"이 아니라 "미국 이익 도구로서의 효용", (iii)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채연·이용익·이재순 같이 윤치호가 "조선의 가장 비열한 악당 중
하나"로 평한 인물들을 적극 발탁한다는 사실 — 세 가지가 한 번에
적시된다.
(b) 윤치호 1901년 (대략) — 알렌 본인의 만족 발화 직접 인용
▎ [!quote] [[sources/dairy/yun-chiho/translation/v05_1897-1902_trans
▎ lation#L973~L975]]
▎ "기차에서 알렌 박사를 만났다. 알렌 박사는 몹시 만족하고 있다. 알렌
▎ 박사는 광산, 철도, 전차선로 등에서 미국의 권리를 확보하는 데
▎ 성공했기 때문에 빈곤과는 한창 거리가 먼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 200만 달러짜리 전기 공장에 투자하라고 황제를 회유하는 것은 조선의
▎ 파산 상태를 알고 있는 알렌 박사에게 도덕적으로 아무런 이득도 되지
▎ 못한다. 하지만 만약 알렌 박사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다른
▎ 누군가가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 단락이 결정적 이유는 **"빈곤과는 한창 거리가 먼 자리"**라는
윤치호의 표현이다. 즉 미국 국익뿐만 아니라 알렌 본인의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한국에서의 이권 협상 성공으로 격상되었다는 동시대 평가가
명시되어 있다. "조선의 파산 상태를 알고 있는 알렌 박사에게
도덕적으로 아무런 이득도 되지 못한다"는 평은 알렌이 한국 정부 재정의
한계를 알면서도 200만 달러짜리 전기 공장 투자를 황제에게 권유하고
있다는 점을 윤치호가 도덕적 차원의 비판으로 끌어올렸음을 보여준다.
(c) 윤치호 1900년 회고 — "유용한 노예" 표현
▎ [!quote] [[sources/dairy/yun-chiho/translation/v05_1897-1902_trans
▎ lation#L626]]
▎ "이채연이 사망했다. 알렌 박사와 이채연이 자신들과 왕실을 중재하는
▎ 유용한 노예라는 사실을 간파한 미국인들을 제외하고 어느 누구도
▎ 이채연의 때 이른 죽음에 대해서 유감스러워하지 않는다. 알렌 박사는
▎ 오랫동안 한성판윤을 역임하면서 부정부패로 악명 높았던 이채연이
▎ 나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금으로 포장된 이해관계는 사람의
▎ 시야를 흐리게 만드는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금으로 포장된 이해관계가 사람의 시야를 흐리게 만든다"는 윤치호의
표현은 알렌이 한성판윤으로서 부정부패 악명이 높던 이채연의 실체를
인지하지 못한(또는 인지하기를 거부한) 이유를 도덕적 부패의
메커니즘으로 직접 설명한 동시대 1차 평가다.
(d) 윤치호 1905년 무렵 — 미국 자본 투자 ≠ 미국 정치 지원
▎ [!quote] [[sources/dairy/yun-chiho/translation/v06_1903-1906_trans
▎ lation#L777]]
▎ "조선에서의 미국자본 투자가 우리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확보할
▎ 것이라는 완전히 터무니없었고, 지금도 터무니없는 사실을 맹목적으로
▎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미국인이 양도받은 금광 사업권, 서울-제물포 간
▎ 철도 사업권, 서울의 전차 사업권, 수도시설 사업권을 보라. (…) 어느
▎ 나라가 제일 먼저 그 보호조약을 인정했는가? 미국이다! 조선에
▎ 대표를 파견한 정부 가운데 어느 정부가 제일 먼저 조선에서 대표를
▎ 철수시켰는가? 미국 정부다!"
이 단락은 알렌이 1897-1905 기간에 확보한 미국 이권의 정치적
환수(歡需)가 정확히 0이었음을 — 1905 을사늑약 시 미국이 가장 먼저
보호조약을 인정하고 가장 먼저 대표를 철수시킨 사실로 — 윤치호가
사후적으로 폭로한 결정타다.
2. 객관적 사료가 입증하는 알렌의 직접 이권
vault [[sources/weber/weber-016_allen-papers-correspondence]]는
알렌이 직접 관여한 미국 이권 협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
│ 연도 │ 이권 │ 알렌 위치 │
├───────────┼───────────────┼────────────────────────────────────┤
│ │ 운산 금광권 │ 직접 협상 — 본 vault weber-016 │
│ 1895-07 │ (Unsan Gold │ 명시 │
│ │ Mine) │ │
├───────────┼───────────────┼────────────────────────────────────┤
│ 1897-1898 │ 경인선 철도 │ 미국 측 협상 채널 │
│ │ 부설권 │ │
├───────────┼───────────────┼────────────────────────────────────┤
│ │ 서울 전차선로 │ 콜브란-보스트윅(Collbran-Bostwick) │
│ 1898 │ 부설권 │ 라인 │
│ │ (한성전기) │ │
├───────────┼───────────────┼────────────────────────────────────┤
│ │ 서울 │ 황제에게 200만 달러 투자 │
│ 1898 이후 │ 수도시설·전기 │ 권유(윤치호 1901) │
│ │ 공장 │ │
└───────────┴───────────────┴────────────────────────────────────┘
이 4종은 알렌이 단순 "선교사 출신 외교관"이 아니라 **미국 동부
자본가들의 한반도 진출 중개자(broker)**였음을 객관적으로 증언한다.
NYPL Allen Papers Series II(B) Diplomatic + II(D) Business — 본
vault [[sources/history-additional/allen_archive/finding_aid]]
§Series II — 가 별도 박스로 보존된 점 자체가 알렌의 활동에서
"외교"와 "비즈니스"가 별도 보존이 필요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했음을
archive 구조 차원에서 시사한다.
3. 그러나 — 비판이 너무 단순화되어서는 안 되는 세 지점
비판이 사료적으로 거의 반박 불가임을 인정한 위에서, vault
[[wiki/people/호러스 알렌#사료적 특이성|호러스 알렌 페이지]] §"미국
이익의 외교관 vs 한국 정세의 안정자"가 정리한 양면성도 같은 비중으로
검토해야 한다.
(α) 을미사변 직후 행동은 명백히 사적 이익 회로 밖
1895-10-13 알렌의 본국 전보 "미우라 연루를 입증하는 압도적 증거"
(FRUS WS-003) + 미우라를 외교단 회의에서 배제 + 한국 외부에 조사
요구 공한 발송 — 미국 본국(올니 국무장관)이 "외교 훈령 위반"으로
책망할 정도의 강경 행동이었다
([[sources/japan-myungseong/03_western_sources#L53~L60]],
[[#L122~L125]]). 이는 알렌이 "사적 이익만 챙기는 자"라면 결코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이 시점에 그는 자기 외교관 경력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한국 정의의 편에 섰다.
(β) 1896 아관파천 4인 보호
1896-02-11 알렌이 이완용·이윤용·이하영·현흥택을 미국 공사관에 보호 —
친러 노선 한국인의 신변 안전 확보는 미국의 직접적 이익이 아니라
한국 정세 안정의 영역이었다 ([[sources/dairy/yun-chiho/translation/v
04_1895-1896_translation#L311]]).
(γ) 1898 고종 미국 공사관 망명 시도 반대
같은 1898-01-23 윤치호 일기에 알렌이 고종의 미국 공사관 망명 시도에
"강력 반대"했다고 적혀 있다 ([[sources/dairy/yun-chiho/translation/v
05_1897-1902_translation#L193]]). 만약 알렌이 순전한 사적
이익자였다면 고종을 미국 공사관에 받아들여 미국 영향력을 직접적으로
확장할 기회를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거절했다.
4. 본 vault가 가리키는 가장 정확한 비판 형태
이 세 비대칭을 종합하면 알렌의 정확한 성격은 **"순수한 자기 부패"가
아니라 "구조적 이해관계의 다중 충성"**이다. 본 vault
[[wiki/people/호러스 알렌#사료적 특이성]] §"미국 이익의 외교관 vs
한국 정세의 안정자"의 분석 그대로:
┌─────────────────┬───────────────────────────────┬─────────────┐
│ 차원 │ 알렌의 행동 패턴 │ 평가 │
├─────────────────┼───────────────────────────────┼─────────────┤
│ 국가 정의 │ 미우라 배척·본국 책망 감수 │ ★ 한국 편 │
│ (을미사변) │ │ │
├─────────────────┼───────────────────────────────┼─────────────┤
│ 신변 안전 (1896 │ 4인 보호 │ ★ 한국 편 │
│ 아관파천) │ │ │
├─────────────────┼───────────────────────────────┼─────────────┤
│ 경솔한 외교 │ │ ★ 한국 정세 │
│ 회피 (1898 고종 │ 반대 │ 안정 편 │
│ 망명) │ │ │
├─────────────────┼───────────────────────────────┼─────────────┤
│ 인적 발탁 (1898 │ "미국 이익 도구" 기준 │ ☆ 미국 편 │
│ 이채연 등) │ │ │
├─────────────────┼───────────────────────────────┼─────────────┤
│ 이권 협상 │ │ ☆☆ │
│ (1895-1902) │ 운산·경인선·전차·전기 │ 미국·본인 │
│ │ │ 양 편 │
├─────────────────┼───────────────────────────────┼─────────────┤
│ │ 미국 정부의 가장 빠른 │ — 결과적 │
│ 1905 을사 시점 │ 보호조약 인정 — 알렌 외교 │ 무력 │
│ │ 자본 0 환수 │ │
└─────────────────┴───────────────────────────────┴─────────────┘
즉 **"알렌이 조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챙겼다"**는 비판은
다섯 차원 중 세 차원에서는 부정확하고, 두 차원에서는 정확하며, 1905
시점에는 가장 통렬하다.
5. 내 견해
vault 사료를 기준으로 가장 정직한 답은:
1. 비판 자체는 동시대 한국인(윤치호) 1차 사료에 의해 거의 반박
불가능하다. 이 점은 인정해야 한다 — 알렌의 1897-1905 정식 공사 시기
활동의 물질적 결과물은 미국 이권 4종이지 한국의 외교적 자율성 확보가
아니었다. 윤치호가 "알렌 박사를 사랑했다 — 그렇다고 해서 조선에서의
미국자본 투자가 우리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확보할 것이라는 완전히
터무니없는 사실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라고 한 1905년
발화([[sources/dairy/yun-chiho/translation/v06_1903-1906_translation
#L777]])는 개인적 호의와 구조적 평가를 분리한 가장 성숙한 1차 사료의
알렌론이다.
2. 그러나 비판은 알렌을 단순한 부패한 자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
1895-10 을미사변 직후 행동은 그가 동시대 외교관 가운데 한국 정의에
가장 결정적으로 발화한 사람이었음을 입증한다. 만약 그가 순전한 자기
이익자였다면 미우라를 외교단 회의에서 배제하고 본국에서 책망받는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3. **따라서 가장 정확한 평가는 — "21년간 한국에 살면서 한국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부분적으로 짊어졌으나, 미국 자본·본국 외교 회로·자기
경력 사다리가 한국의 자율 외교 확보보다 우선했던 외교관"**이다.
결과적으로 1905 을사 시점에 그가 1897-1905 8년간 확보한 미국 이권은
한국에 어떤 정치적 보호막도 제공하지 못했다 — 이것이 윤치호의 1905년
사후적 비판의 가장 차가운 지점이다.
4. 알렌과 [[wiki/people/헐버트|헐버트]]의 대조는 이 평가를 더
선명하게 한다. 같은 미국인이면서 동시대에 한국에 있었던 헐버트는
1905-10 고종 친서를 휴대해 시어도어 루스벨트에게 직접 호소하고, 1907
헤이그 밀사 실질 기획자 역할을 했다 ([[wiki/people/헐버트]]).
알렌은 이 역할을 하지 않았다 — 1905-11-17 을사늑약 시점에 그는 이미
미국 공사 퇴임(1905) 상태로 한국을 떠난다. 양자의 차이가 "한국 위에
서 있던 미국인"의 두 종류 — 헐버트=정치적 변호인 vs 알렌=경제적
중개인 — 를 가장 명확히 가른다.
요컨대 비판은 정당하다. 단 그 비판은 알렌의 인격적 부패를 향한 것이
아니라, "20세기 초 미국의 한반도 진출에서 외교와 자본의 분리되지
않은 양면 구조" 자체를 향한 것이어야 한다. 알렌은 이 구조의 가장
충실한 인격적 구현체였고, 윤치호의 1898·1900·1901·1905 일기는 이
구조를 동시대 한국인이 정확히 간파했음을 증명하는 1차 사료다.

 

5) 기타 설치된 Obsidian으로 해당 Vault 구성된 폴더를 열어 다양한 응용도 가능

 

 Obsidian툴도 여러가지 검색이나 확인에 이용할 수 있다. Obsidian을 실행해서 Open Vault로 해당 폴더를 열면, 시각화된 정보나 다양한게 정리된 메타 정보, 원본을 편하게 열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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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작동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