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개발일을 하다보면, 이 컴퓨터가 어떻게 이렇게 잘 작동하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언제나 같은 결과를 내놓고, 그리고 잘 "작동"한다.
원래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면 별로 관심 둘 일이 없지만,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다. 대체 이 계산력의 근간은 무엇일까? 과거에 톱니바퀴를 돌려 덧셈을 계산하던 계산기는 눈으로 보이기라도 하지만, 컴퓨터의 계산은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계산"을 잘 실행할 수 있을까?
정답은 "자연의 계산력을 해킹한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톱니나 전자 소자도 마찬가지다. 자연의 물리 법칙에 맞게 작동하는 존재의 법칙 준수를 그대로 이용하는 것이다. 이는 최근의 양자 컴퓨터도 마찬가지인데, 현대의 모든 계산기는 자연 법칙의 일관된 작동에 기반하게 된다.
톱니바퀴에 의한 계산기부터 살펴보자. 가장 간단한 것은 덧셈이다. 5+6=11이라는 것은 누구나 암산 할 수 있지만, 이것은 사람의 뇌의 힘을 빌어서 할때는 그렇다. 기계적으로 이 덧셈을 하려면 어떻게 할까? 가장 손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기계식 시계"이다. 기계식 시계는 세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개선 되어온 톱니 계산기 중의 하나이다. 60초는 1분이며 60분이 1시간이 되는 기본 구조를 가지고 초침과 분침이 돌며 숫자를 가리킨다. 즉, 60초가 되어 톱니가 한바퀴 돌면 더 큰 톱니를 움직여 1분을 더해주고, 그 1분이 60분이 지나 결국 더 큰 톱니를 조금더 움직여 1시간을 나타낸다. 60진법 덧셈 계산기인 것이다. 아래가 그 태엽에서 시작된 동력이 어떻게 초/분/시가 연결되어 나타내지는 보이는 구조이다. 각 축에는 시침,초침,분침이 연결된다. 맨 상단의 메인 스프링통이 돌면서 첫번째 휠이 아주 천천히 돌 것이고(시간), 그 정확한 비에 의해서 다음 휠이 그 다음 속도로 돌고, 또 그 다음 휠이 그 다음 속도로 된다. 그 비율은 1:60으로 고정되어 있다. 맨 하단에는 이 휠이 일정한 속도로 돌도록 일종의 진자 역할을 하는 밸런스 휠이 붙어 있다.
상기의 Second Wheel이 시침이며, Third Whell이 분침, Fourth Wheel이 초침이며 실제로는 아래와 같이 좀더 복잡하게 붙어있다. 그리고 시계의 맨 앞판에는 실제로 숫자와 눈금이 있어 우리가 숫자를 읽게 된다.
여기서 사용하는 자연의 법칙은 무엇인가? 단순한 물리 법칙이다. 톱니와 톱니가 맞물려있고, 그 돌아가는 비에 따라서 톱니가 다른 속도로 회전한다. 거기에 단순히 시침,분침,초침을 달아서 읽어 내면, 60진법의 덧셈을 하는 기계를 목격하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면 이 계산기는 현대의 전자식 계산기에 비하면 효율이 떨어진다. 톱니가 많아지면 돌리기 어려울 뿐 아니라, 정확한 비율로 톱니가 깍여있지 않으면 많이 돌렸을 경우에 오차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1950년대 이전의 컴퓨터는 모두 위의 톱니를 사용하거나 아니면 전기의 힘을 일부 차용했다(진공관). 톱니가 아니고 어떤것으로 계산이 가능하지?
놀랍게도 1950년대에 AT&T 벨 연구소에서 개발한 트랜지스터를 조합하면 이제 전기와 전자를 통해 이 계산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전자적인 힘이기 때문에 효율이 매우 높다. 고속으로 계산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셈이다.
톱니의 회전에 의한 덧셈은 직관적이라서 쉽게 이해가 가지만, 과연 이 트랜지스터를 가지고 어떤 계산을 하는지 의아해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디지털 회로는 AND, OR, NOT 정도 구현할 수 있다면, 입력에 대한 다양한 출력을 제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AND, OR, NOT을 전기를 흘러서 변형하도록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이 트랜지스터이다. 전기가 흐르지 않는 것을 0, 5V가 흐르는 것을 1로 약속하고, 트랜지스터를 적절히 배열하면, 입력되는 전기에 대해 출력되는 전기를 아래와 같이 제어할 수 있다.조금 더 단순화하면 이 트랜지스터는 전자적인 스위치이다. 사람이 손으로 선을 끊거나 이어주지 않아도, 전기를 흘리거나 흘리지 않는 방법으로 전기의 차단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즉 모든 입력에 대해 출력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리고 이것을 회로 기판에 직접 그려서 고정시키면 H/W라고 표현하고, 더 복잡한 방식으로 구성해서, 이 논리회로 구조를 메모리에서 읽어서 소프트웨어적으로 바꿀 수 있게 만들어주면(즉 가변 회로) 그것이 바로 프로그램이 된다. 현대의 폰노이만 체계에 의해서, 이 디지털 논리회로는 프로그램에 의하여 입력/출력을 바꿀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이 현대의 컴퓨터이다(프로그램 내장방식까지 더해져서 편리함이 엄청나다. 예전에는 회로의 기능이 바뀌면, 배선을 손으로 다시 해주거나 회로 기판을 다시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 복잡한 이야기 속에도, 그 근간에는 역시 전기와 전자의 물리적인 자연 법칙이 작동하는 것을 인간이 이용한다는 면에서는 자연을 해킹하는 것과 역시 같다. 그러면 여러분 만의 컴퓨터를 만드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간단하다. 물리 법칙의 어딘가를 빌려다가 그 값으로 계산을 하면 된다. 오래된 되었지만 최근의 흥미롭게 다뤄지는 사례가 바로 아날로그 컴퓨터이다. 디지털 컴퓨터는 상기 0과 5V의 전압 차이를 가지고 0과 1로 단순화해서 계산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여러 사이클을 반복하면서 계산해야 한다. 그런데 어차피 계산 값만 확보하면 되니, 0~10V를 각각 0에서 10이라고 가정하고 계산하면 더 빨리 계산할 수 있지 않을까? 저항을 나누고 싶은 값이나 곱하고 싶은 값으로 적절히 설정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장점은 매우 빠르게 계산할 수도 있다. 디지털 컴퓨터로는 수많은 사이클을 거쳐야만 하는 계산이, 회로를 한번만 작동시키면 값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 아래 베리타시움 채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9ROD_oxpVcA
그러면 양자 컴퓨터는 무엇일까? 바로 양자의 물리 법칙을 해킹해서 자연의 계산력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 양자의 물리 법칙이 보여주는 계산력은 대단하다. 어느 정도냐면, 몇가지 변환을 거치면 소인수 분해를 매우 빨리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자연의 계산력이라는 것은 소인수 분해를 고속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미래의 컴퓨터라는 것은 모두 이렇게 정의해볼 수 있다. 자연의 계산력을 훔쳐 쓰는 장치다. 사람의 암산은 그럼 다를까? 사람의 암산도, 신경세포의 조합에 의한 화학과 전기 법칙의 기반하에 작동하고 있고 역시 사람의 연산도 자연의 물리법칙을 차용한 셈이다. 결국 우리의 모든 계산력은 자연을 빌려다 쓰는 셈이다. 어떻게 돌려서 만들고 싶어도, 자연의 법칙에 의존하지 않는 계산기는 아직까지는 공식적으로 발견된 적이 없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시각은 어떤 면에서 도움이 될까? 바로 현대의 디지털 컴퓨터를 우리가 지배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그것이 사실은 매우 특수한 형태였다는 점이다. 원래 자연을 어떻게든 해킹해서 더 다양한 컴퓨터를 만들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그런 상상을 해왔다면 현대는 더 다양한 컴퓨터들로 가득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 모든 계산력이 결국 자연에서 왔다는 점도 개인적으로는 늘 인상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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