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라는 논리의 세계에서는 무한이 필수적으로 등장할까?
우리가 고등학교 수학시간에 처음 만나는 무한은 사실 수학의 발전 과정에서 곧 마주하게 될 운명인 녀석이다. 매우 여러군데에서 마주치게 되는데, 고대에 제논이 가장 먼저 들고 나왔다. 내가 어느 지점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그 중간 지점을 지나야하고, 또 그 중간 지점을 지나야하면서 영원히 많은 점을 지나야 하는데 어떻게 원하는 지점에 도착하느냐라는 문제이다.
답은 간단하다 무한소의 시간으로 이 영원의 점을 건널 수 있다. 이런점들을 잘 반영하는 것들이 어찌보면 미적분이겠다.
또다른 사항들이 있다. 원통을 굴리면 원통의 점과 원통의 맨 아래 바닥이 각각 같은 직선을 그리며 굴리는 방향으로 직선이 그어진다. 원의 맨 바깥이 펼쳐지며 직선이 만들어지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원의 한가운데는 대체 어떻게 직선을 만들 수 있을까? 그것은 점이 모여서 선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은데 사실은 점이 모여서 선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점은 길이가 0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법이 있다. 무한히 많은 점이 유한한 길이를 만들 수도 있게 된다.
무한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지만, 칸토어가 지적한 대로 단순히 1:1 대응을 산정하면 된다. 0과 1사이의 유리수는 무한한 자연수와 1:1 대응되며 본질적으로 같다. 사실상 그 둘은 같다. 그 달라보이는 둘이 사실은 같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이 무한이라는 개념을 더 세련되게 수학적으로 다루게 되는 것이다.
물리학의 세계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물리학은 사실은 세상이 그렇다기보다는 수학 방정식으로 세상을 기술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은 무한의 무언가를 인류는 아직 무한의 정확도로 관측한 적은 없다. 과연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에서는 방정식이 기술한대로 시간이 정지하는가? 빛을 한 방향으로 두개를 쏘았다고 치면 한쪽 빛에서는 다른 쪽 빛이 여전히 광속이어야 한다. 이런 것들은 모두 무한의 개념이 필요한 현상들이다. 그러면 실제 우주라는 시뮬레이터는 무한을 정확히 다루고 있을까?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 모든 시뮬레이터는 무한이 필요할까를 다시 상기해보면, 사실은 필수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한의 핵심은 아무리 더 큰 정확도로 측정해도 계속 정확한 것이 보증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무한의 정확도로 하는 측정이 불가능하다면 시뮬레이터는 무한을 다룰 필요까지는 없다. 그저 아주 작은 값 같은 경우에는 더 눈치 못채도록 더 작은 값의 상수를 사용하고 저 작은 수를 보증하면 되고, 큰 값의 경우에는 그것도 마찬가지다. 더 큰값을 다뤄주면 된다. 무한이나 무한소를 보증할 필요는 없다. 계산 결과는 측정가능한 범주보다 더 세밀하기만 하면, 시뮬레이터 안에서는 그 시뮬레이터가 무한을 다루는지 아닌지 알 수 없게 된다.
여기서 재미있게도 측정이라는 개념이 꽤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뮬레이터가 무한을 다루는지 아닌지는 충분히 세밀한 정확도로 측정해서 알아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방법이 하나 있는데 통제 환경에서 무엇이 계속 반복되도록 만들어놓고 그 오차의 향방을 알아가는 방법도 있다. 예를들어 반내림을 하거나 반올림을 하면, 더 쉽게 알아낼 수 있다. 무언가가 확률적으로 계속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겠는가.
좀 이야기를 전환하면 시뮬레이션 우주 등의 개념이 인기를 끄는 이유가 바로 이 플랑크 상수 때문이다. 우주는 벌써 이 무한의 정확도를 감당하고 있지 않는 점이 밝혀진게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다. 어느 길이 이하로는 의미가 없는 길이가 존재한다는게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전에 논의했던 블랙홀 안에서 시간이 정지하는 현상은 플랑크 상수 때문에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닌가(정지하는 시간 같은 것은 없는게 아닌가. 어차피 플랑크 길이 이하도 존재하지 않는데). 빛의 속도로 이동해도 옆에 있는 빛은 정확히 빛의 속도가 아니지 않겠는가. 여하튼 이 함의는 좀더 두고 볼 일이다.
아무튼 첫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무한을 다루지 않아도 시뮬레이터는 당연히 성립한다는 이야기이고, 우리가 있는 이 우주도 그럴것 같다는 점이다. 상대성이론은 무한을 추종하는 미분방정식들이 이 띄엄띄엄한 양자역학에서 충돌나는 것도 어찌보면 그런 맥락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무한소로 내려가다보면 더이상은 정확도가 안떨어지는 discrete한 세계이며, 그때부터는 0과 1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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