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철학2024. 2. 12. 09:36

역대의 물리학 혁명을 거론할때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바로 중력이다.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를 꼽으라는 투표에서 흔히 등장하는 것이 뉴튼, 맥스웰, 아인슈타인인데, 뉴튼과 아인슈타인이 같이 연결된 것이 바로 중력이다. 물리학이 천문학에서 유래했다면, 별들을 예측하는데 가장 중요한 발견이 중력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이 중력을 둘러싼 해석은 역사적으로 다양했고, 아인슈타인이 등장한 이후에야 비로소 통일된 해석을 시작했다.

 

 무슨 이야기일까?

 

 다시 한번 숨을 가다듬고 생각해보자. 이 알 수 없는 우리 눈앞에 보이는 예컨데 "공", 다시 말하자면 "질량"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손으로 잡은 후, 멀리 던지면 땅에 떨어지는 이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 존재를 아래 두가지로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상 알고 있다(그리고 이는 뉴튼이 맨 처음 수학적으로 정리한 형태이기도 하다)

 

1. 밀거나 멈추는데 힘이 들어간다(F = ma, 관성질량)

2. 두 질량이 있는 존재는 서로 당긴다(뉴튼의 중력 계산, F = G * m1 * m2 / r^2, 그래서 지구쪽으로 떨어진다. 중력질량)

 

 그리고 당연히 인류는 아인슈타인 이전까지 이 둘을 이렇게 서로 다른 것으로 정의해서 사용하였다. 어떤 이들에게는 사실 같아 보이는데, 사실은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떻게 해도 둘을 같게 해석할 수가 없다. 공을 빠르게 하는데 힘이 들어간다는 사실이, 두 공이 서로 당긴다는 사실과 연관짓기가 힘든 것이다.

 

 이는 물리학자들에게 각기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으로 구분되었고, 초기에는 이 둘이 같다는 여러가지 증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피사의 사탑에서 무거운 공과 가벼운 공을 낙하시키는 실험이 그렇다. 중력과 가속도가 동시에 반영되는 상황에서는 그래서 질량에 상관없이 동일한 운동을 보인다. 공기가 없는 와중에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공도 그러하다. 그것들은 본래의 질량과 관련이 없다. 관성 질량과 중력 질량은 마치 동일한 것처럼 작동한다는 사실에 늘 과거의 물리학자들은 의아해했다.

 

 그런데 이 둘을 합쳐서 생각해볼 수 있는 방식이 존재한다. 그것은 대체 어떤 것일까? 가속하기 어렵다는 사실과 두 질량이 서로를 당긴다는 사실을 어떻게 하나의 원리로 바라볼 수 있을까?

 

여기에 아인슈타인이 주장했던 등가 원리(equivalance principle)는 그 중요한 열쇠가 된다. 즉, 엘레베이터 안에 갇혀있어서 밖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는 이 두가지를 구별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밖에서 엘레베이터를 누가 밀어서 가속하면, 그 안의 내가 뒤로 밀릴텐데 이것이 가속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지구같은 어떤 큰 질량이 옆에 있어서 중력에 의해 그렇게 되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깨달음이며 등가원리의 기본이다. 그 둘을 구별할 수가 없다. 질량의 존재가 가속을 방해하거나 질량끼리의 당기는 힘을 만들어내면 된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할까? 놀랍게도 바로 질량이라는 것이 시공간을 휘면 그렇게 된다. 특수 상대성이론 등 여러가지 속에 그 기초를 닦은 아인슈타인은 그렇게 이 질량을 바라보는 시각을 혁신했다.

 

 그렇다. 질량은 시공간을 휜다. 그렇게 두 질량이 시공간을 휘면 서로에게 다가가려고 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이기 때문이다. 홀로 있을때는 어떠한가, 시공간이 휘면서 질량은 스스로를 감가속이 없는 상태로 유지하고자 하기 때문에(자기 스스로에게 낙하) 가속에는 힘이 들게 된다. 질량이 단독으로 존재 할 때도, 여러 질량이 같이 있을때도, 시공간의 휘어진 형상은 이 질량은 가속하기 어렵게 또한 서로에게 당겨지도록 하는 힘의 장을 만들어낸다. 아인슈타인의 장 방정식(Field Equation)이다.

 

 아래의 계량 텐서는 각 공간의 구조를 결정짓고, 이는 각 요소들간의 미분관계를 담는 리치 텐서와 질량/에너지의 분포를 다룬 스트레스-에너지 텐서를 통해 결정된다.

아인슈타인 장 방정식, 나무위키 발췌,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질량으로 인한 휘어진 시공간을 미분으로 나타낸다.

 

 이렇게 통합되어 설명하고 나면, 시공간의 휘어짐이 임계치를 넘는 블랙홀이라던가, 거대 질량 주변의 시간이 느리게 간다던가 하는 효과를 모두 계산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관성질량/중력질량으로 구분해서 이해하던 시기보다도 훨씬 더 대규모의 자연 현상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즉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이라는 두가지 관점을 장방정식으로 풀어낸 것이 아인슈타인의 업적이 되겠다. 서로 다른 두개를 하나의 틀에서 볼 수 있게 되자 기존의 상황이 더 명확해졌고, 훨씬 더 극단적인 상황에서의 예측이 가능해지게 된 것이다.그곳에는 공간의 휨뿐만 아니라 시간까지도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 된 셈이다. 그렇게 그의 업적을 바라볼 수가 있다. 인류 역사의 기록에 남겨진, 기막힌 통찰의 순간 중의 하나이다. 우리가 향후에 또다른 통합된 이론을 가지게 된다면 왜 그때는 이것이 서로 같다는 것을 몰랐을까 라고 한탄할 주제에 대한 사전 예시가 아닌가.

 

 장방정식 관련해서는 아래 차동우 교수의 짧은 강의를 참고해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E3o1KahfWMw&t=120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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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작동미학
자연철학2024. 2. 12. 09:35

 일반인에게는 조금 낯설 수도 있지만, 세기의 천재를 지칭할때, 물리학자들은 제임스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을 빼놓지 않는다. 그는 이 블로그에 있는 맥스웰의 도깨비를 창조해낸 인물이기도 하지만, 전자기학의 수학적 체계를 완성한 시조격으로 불리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그는 전자기와 빛에 관한 이론 통합된 관점을 제공했다.

 

 맥스웰이 활동하던 시기는, 전기와 자기, 그리고 빛은 모두 서로 다른 존재였다. 자석으로 나침반을 만들었고, 특정 상황에서 발생하는 전기에 대해 연구하였고, 따로 광학이 연구되었지만 서로간의 그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맥스웰은 아래와 같은 방정식으로 전기와 자기의 성질에 대해 과거 학자들의 내용을 미적분으로된 방정식으로 정리했다. 패러데이가 실험만으로 전자기 유도 현상을 설명한 것과 다르게 이론 체계를 잡은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https://ko.wikipedia.org/wiki/%EC%A0%9C%EC%9E%84%EC%8A%A4_%ED%81%B4%EB%9F%AC%ED%81%AC_%EB%A7%A5%EC%8A%A4%EC%9B%B0

 

1. 어떤 전하를 둘러싼 닫힌 곡면을 통해 나가는 전기력선 수는 그 전하에 의해 결정된다(전기력, 쿨롱의 법칙, E는 전기장, 전하는 음극이나 양극 단독으로 존재해서 힘을 발휘한다)

2. 임의의 폐곡면을 나가는 자기 선속이 0이다(자기력, N극이나 S극은 독립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력은 나가면 다시 돌아온다. B는 자기장)

3. 자속 밀도의 시간에 따른 변화는 전기장을 생성한다(패러데이의 유도 법칙, E와 B의 관계)

4.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전기장과, 전류에 의해 자기장 변화를 나타낸다(from 앙페르의 법칙, 외르스테드)

 

 재미있는 것은 이 법칙들에 의해서 공간 속에서 전기와 자기가 서로를 유도하며 전파되는, 전자기파 파동방정식이 유도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전자기파의 진행 속도는 '광속'과 같다. 이 모든 것을 단순한 방정식으로 정리하고 증명한 것이 맥스웰의 업적이다.

 

 그이전에 인류는 자석과, 전기, 빛이 서로 독립적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했는데, 맥스웰은 상기 4개의 방정식으로 정리한 후 이를 통해 전자기 파동의 파동방정식을 유도해내고, 그것이 서로 영향을 주는 얽혀있는 현상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수학적으로 나타낸것이다. 그리고 이 결과에 의해 전자기파 파동이 존재하고, 그 속도는 광속인 것. 즉 빛이라는 것이 전자기파 현상이라는 것을 입증한 셈이다.

 

 그렇게 인류는 이 알 수 없는 현상들을 하나로 설명해낼 수 있게 되었고, 이는 모든 무선 통신과 전기/자기의 제어에 대한 예측이나 계산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리처드 파인만은 이러한 맥스웰의 업적을 인류 문명의 발견 중에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로 꼽았다. 아인슈타인의 중력에 대한 해석과 함께, 인류사의 자연에 대한 통합 해석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리처드 파인만 (1964): "인류의 역사를 장기적으로 보면, 예를 들어 지금으로부터 10,000년 후로 볼 때 19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 맥스웰의 전기역학의 법칙 발견으로 평가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미국 남북 전쟁은 같은 10년 동안 일어난 맥스웰의 중요한 과학적 사건과 비교할 때 변방의 무의미한 사건으로 변할 것이다.", 인용 : https://ko.wikipedia.org/wiki/%EC%A0%84%EA%B8%B0%EC%99%80_%EC%9E%90%EA%B8%B0%EC%97%90_%EA%B4%80%ED%95%9C_%EB%85%BC%EB%AC%B8%EC%A7%91


 

아래는 관련해서 김갑진 교수의 설명을 담은 youtube영상이다. 그의 업적을 살펴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OTF-oP7io_M&t=71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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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작동미학
자연철학2023. 4. 15. 10:33

 사람은 늘 예측을 하면서 살아간다. 길을 걷거나 뛰어갈 때, 계단을 오르내릴 때, 인지 못하는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 예측하고 행동하는 일을 반복함으로써 넘어져서 다치는 일을 피할 수 있다. 먹을 것을 찾고,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서, 경쟁하고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인간은 끊임없이 예측해야 했다. 그래서 진화에서 주변을 지각하여 대응하는 이 지능이라는 기능의 가장 큰 기여는이러한 예측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예측은 인간 생애에 한정되어 일어난다. 우리는 100년 남짓의 지구에서의 생활에 최적화되어 예측을 행한다. 그러나 근대를 지나서 집단 지성을 통해 드디어 인간은 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 범위를 뛰어넘기 시작했고, 뉴튼은 이러한 기념비적인 정확한 예측 작업의 체계적인 첫 시작을 한 것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천체의 움직임을 중력이라는 원리로 인해 수학적으로 기술함으로써 이제 행성의 위치를 매우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수학은 이렇게 인간의 지각을 넘어서는 분야에서 예측의 중요한 도구가 되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오감으로 느껴지는 일부분 외에는 소위 "직관적으로" 혹은 "본능적으로" 예측하기 어렵다. 너무 작은 세계이거나 너무 느리거나 빠른 세계의 현상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분야에 대해서는 뇌가 곧바로 대응하지 못한다. 뇌에 축적된 경험이나 반응은 인간에게 익숙한 현상들에 집중되어 있다. 인간은 양자의 세계를 온전히 편안하게 이해할 수 없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평범하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엄연히 잘 느끼는 온도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체계를 잘 몰랐던 일식이나 월식도 마찬가지였다. 전체적으로 어떤 모습의 인과속에서 작동하는지는 눈에 전체가 제대로 보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었다.

 

 우주의 기원같은 문제도 마찬가지다. 지구의 역사도 그렇다. 애초에 그런 것들은 인간이 평소 보유한 경험이나 그 상상에도 대부분 어긋난다. 그런 것들이 교육을 통해 편안한 마음으로 머리 속에 자리잡도록 기대하는 것 자체가 이 문제의 난이도를 과소 평가하는 셈이다. 어떤 인간도 편안하게 이런 세계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인류가 그것을 수학적으로 기술하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아주 어렸을 적에 그것들을 배운다 하더라도 마음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우리의 뇌는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도록 진화되거나 훈련되어 있지 못하다. 그저 수학이라는 도구 혹은 기계를 통해서 바라보고 예측해낼 수 있을 뿐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 오늘 다뤄보고 싶은 것은 우주의 역사에 대한 부분이다. 반복해보자면, 우주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의 시작은, 우선 그것이 지구에 살아가는 동물로서의 일반적인 이해력으로 따라가기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주의 역사 같은 것은 우리가 살아오면서 축적한 경험과 지식과는 그 양상이 다르다. 대략은 어찌어찌 그렇게 받아들인다고 쳐도 그 현상을 자세히 예측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그저 남이 예측한 것을 그때그때 외울 수 있을 뿐이다. 수학적인 접근이 없다면 그래서 각 상황별로 정확히 계산해서 예측하기도 어렵다. 공을 던지는 것을 몇번 바라보고 그 공을 잡을 수 있게 되는 것은, 중력을 온몸으로 이해하고 있는 이 지구라는 공간 정도 뿐이다. 양자의 세계에서나 우주의 시간에서 몇번 바라보고 공을 잡아내는 계산을 할 수 있는 논리회로가 뇌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먼저 이 사실을 마음깊이 이해해야만 우리는 우리가 보지 않았던 것들을 예측하는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그리하여 자연을 연구한 이들은 자신의 본성보다는 여러가지 상상력 속에서 수학에 더 깊이 몰입해 이 도구를 신봉하게 된다. 이 계산의 틀만이 대칭과 보존을 이루는 것으로 믿어지는 자연을, 놀라운 스케일과 다양한 조건 속에서 예측해낼 수 있다. 적절한 가정을 통해 계산하여 관측 결과와 들어맞으면 우리는 이 방정식을 통해, 우리가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자연을 구체화하고 드디어 예측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무수한 노력에 따라 인간이 우주에 대해서 하고 있는 현재의 예측은 다음과 같다. 엄청난 시간 속에 우리의 미래는, 영원한 팽창과 멀어짐 속의 소멸로 간다. 그러나 이 사건을 운석 충돌로 인한 공룡의 멸망과 같이 놓고 볼 필요는 없다. 그것은 인간에게는 너무 느린 속도로 진행 되고 있기 때문에 티끌만큼도 걱정할 대상이 아니다. 인간의 본능적인 소멸에 대한 이해와 수학적으로 예측한 우주의 소멸에 대한 이해가 달라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인간이 경험한 어떠한 재앙스러운 소멸도 이 계산의 결과를 이해하는 일에 쓰이기에는 부적당하다. 그것은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uD4izuDMUQA 

 

 이렇게 내가 경험하기 어려운 공간과 시간을 예측하기를 원하는 이는, 그것이 인간의 본성과는 괴리됨을 이해하고 그리고 그것이 수학이라는 도구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먼저 인지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수학 체계에 대한 여러가지 이해의 시도가 그나마 인간을 이러한 경험하지 못한 세계로의 이해로 안내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서 가장 집중해야할, 그나마 인간이 인지하기 어려운 자연을 이해할 수학 체계의 본성에 대한 이해가 무엇을까? 바로 대칭과 보존, 무한과 임의성 같은 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몇가지 과거의 경험과 상상이면 이러한 대칭이나 보존 같은 정도는 내 본능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늘 시각에서 대칭을 잘 찾아내고 아름다워 하지 않는가? 그리고 이것들에 대한 기술은 이미 몇 편의 이 블로그 글에서 진행했는데, 과연 이것으로 어떻게 우주를 상상하고 예측해 볼 수 있다는 말일까?

(신비롭게도 아직 우주에는 대칭이나 보존이 깨졌다는 명백한 증거를 발견한 적이 없고 반대로 그것이 지켜진다는 증거는 도처에 존재한다.)

 

 첫번째는 우주에는 무한의 시간 속에 모든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그 각각의 모든 일이 무한번 발생하게 된다. 우연히 물감을 엎질렀는데 모나리자가 그려질 확률은 0에 가깝지만, 무한의 세상에서는 무한번의 모나리자가 그려진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이러한 통찰은 생명의 탄생이나 여러가지를 설명해 줄 수 있다. 우리는 그 무한의 어딘가 한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인류가 거의 무한번 나타난다고 해도 이상한 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확률이 희박한 것은 무한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한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것은 모두 무한번 일어난다. 이런 점에서 우주가 탄생하고 영원히 나이먹는 과정 정도만 밝혀진 상황에서도, 우주의 탄생이 단 한번의 유일한 것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두번째 사실에 근거한다.

 

 두번째는 우리가 담고 있는 세계가 보여주는 대칭과 보존이다. 미시세계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대칭과 보존은 깨어지지 않는다. 사람이 시각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이 대칭은 무언가 기억하지 않고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단순한 수학적 전개가 이루는 기본 틀이다. 우주가 어떻게 태어나고 팽창하던 그것은 무한의 반복 속에서 대칭과 보존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런 사실만으로도 다중 우주에 대한 주장이 곧바로 지지받게 된다. 만약에 우리가 사는 우주가 어떤 닫힌 무엇인가라면 합쳐서 0이 되는 반대의 무엇인가가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한번 생긴 것이라면, 단독으로 생길리 만무하다. 그것은 보존 속에 무한번 다양하게 생겨야 한다. 대칭으로 태어나 무한번 반복되어야 한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그런 면에서는 양자역학으로 증명된, 세계가 이산적(discrete)이라는 해석은 당혹스럽기는 하다. 왜 그런 끊김이 존재하는가. 그런 끊김이 대칭과 보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그리고 왜 하필이면 그 scale에서(플랑크 상수) 끊기는가. 그것은 계속 상위와 하위에서 반복되는가?

 

 이런 기본적인 상상들이 이 분야에 대해, 그나마 인간의 이성으로 도전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계산하기 전에 수학이 가진 여러가지 틀 관점에서 바라보는 그런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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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작동미학
자연철학2023. 3. 25. 16:45

 사람은 일생동안 제한된 공간 안에서, 정해진 시간만큼만 살게 된다. 인생은 한없이 길게 보일 때도 있지만, 사실은 그 백년이 안되는 기간 까지의 범위일 뿐이다. 장소의 한계를 보자면 비행기를 타고 더 멀리 가서 그것을 확대하거나, 밤하늘에 고개를 들어 별 가득한 하늘을 보는 식으로, 관측하는 범위를 역시 크게 확대해 볼 수 있다(가장 극적으로 온우주와 다양한 시간으로 관측하는 범위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역시 무한해보이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는 그저 점과 같은 한계 안에 있게 된다. 지구라는 공간 하에서 인간의 삶인 100년이라는 시간은 우주의 척도에서는 그저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에게 직접 주어지는 관측의 정보라는 것은, 빛이라는 효과적인 원천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그 양은 아쉽기 그지 없다.

 

 그러나 여러가지 책들을 접하고 이해하게 되면, 인류가 지금까지 관찰과 추론으로 넓혀온 여러 범위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간접 체험을 해볼 수 있다. 그렇게 더 긴 시간과 큰 공간을 경험하면, 사고의 범위가 넓어지게 되고 현재의 작은 어려움들을 더 확대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또한 뜻밖에도 현재가 낯설어지는 상태가 어떤 것인지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현재가 낯설다는 말은, 내가 공감하는 범위가 더 늘어나면, 지금 이 현재라는 것이 유구한 시간 속에서 아주 특별한 순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 시대만을 살기 때문에 지금의 일상이 평범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흔히 누군가를 특이하다고 이야기하고, 그에 비교하는 보편을 이야기하지만, 시간과 공간을 대규모로 확장해보자면 인간만큼 특이한 존재가 있을까도 싶고, 지구도 비슷한 위치에 있다. 인류가 살아가는 이 몇십년 몇백년 시대도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런 이야기를 담은 중에 이 지질학 책은 특별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의 상태가 늘 지금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104404640?pid=123487&cosemkid=go16352122659030899&gclid=Cj0KCQjwt_qgBhDFARIsABcDjOd7FocWdiWFMB-j3s-SbyArUCt0m09gC2OlTvAL9vKGrG-Ys5WUUboaAi8wEALw_wcB 

 

지구의 짧은 역사 - YES24

“일상의 언어로 만나는 지구의 역사!”하버드 자연사 강의가 지금 내 손안에서 펼쳐진다!40년간 하버드에서 지구과학 연구를 이끌어온 저자, 앤드루 H. 놀이 기나긴 지구의 역사를 보기 쉽게 압

www.yes24.com

 

 지구라는 이 오래된 어르신(?)은 지구적인 재앙인 운석 충돌이나 거대 화산 폭발, 수십만년의 빙하기를 수도 없이 거쳐왔다. 그에 비하면 작은 지진이나 해일 정도에도 큰 피해를 받고 충격받는 젊은 인류로서는 상상도 못할 재앙이다. 예를들면 지구의 시간을 아주 빨리 돌려보면 지구는 마치 끓는 물을 보는 것과 같아서 5억년쯤만 거슬러 올라가도 지금의 거의 모든 땅은 지하 마그마 속에서 아직 올라오지 않은 상태이고, 지금은 지하로 사라진 마그마가 땅이라는 것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그저 끓어서 부글거리는 물을 보듯이 우리 지각도 빠르게 돌리는 시간 속에서는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다. 그 긴 시간속에서 우리가 지금 순간으로 바라보는 정지된 지구는, 아주 낯선 모습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이 책에 잘 묘사되어 있다. 필자가 영국 해안의 절벽을 쳐다보며 지질이라는 거대 시간을 느낀다는 장면은 새삼, 인간이 지혜와 지식으로 지각하는 시간을 넓혀가는 모습의 한 사례를 느끼게 해준다.

 

 두번째로는 우주의 역사에 대한 책이다. 빅뱅을 거쳐 항성과 행성이 탄생하고 그 물질들이 다시 생명을 이루고 수없이 시간이 지날때 자연이 어떠한 길을 걷는지 설명해준다. 이 책을 읽으면 지구의 우리가,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으면서 얼마나 전 우주적인 엔트로피 증가를 극복하고 활력 넘치게 살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우주가 맞닿을 아무것도 없는 잡음의 세계를 알려준다. 그렇게 수많은 폭발과 침묵의 시간 속에 지구라는 생명의 시기가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를 설명해준다.

 

https://www.aladin.co.kr/shop/ebook/wPreviewViewer.aspx?itemid=263559484 

 

엔드 오브 타임 - 브라이언 그린이 말하는 세상의 시작과 진화, 그리고 끝>

 

www.aladin.co.kr

 

 세번째로는 인간의 역사에 대한 책이다. 특히나 1900년 전후의 역사이다. 이 부분은 한권으로 요약하기는 어려운데, 인류가 지구의 한 동물 종으로서가 아니라, 절대적인 부가가치를 생산해내는 고도의 지식 연합체로 나아가는 존재로서 인류가 걸어온 길을 보여준다. 대한민국의 사는 필자로서는 메이지 유신 이후 극동아시아의 역사를 추천해보고 싶다. 특히나 외교업무를 하는 리더들의 기록이 그것이다.18세기부터 지금까지의 과학사도 마찬가지다. 19세기부터 전세계 GDP가 급증하게된 배경에 있는 다양한 지식의 확대를 통해 어떻게 인류가 여기까지 왔는지 알 수 있게 되면, 지금이 얼마나 빨리 변화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더 빠르게 가속되고 있는지 더 긴 시간대에서 느끼고 체감할 수 있다.

 

 

 얼마나 현재를 특별한 것으로 볼 수 있는가가 얼마나 긴 시간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는지를 반증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지구에 오늘날의 문명을 갖고 발전시키는 우리는 우주 전체라는 공간에서는 기적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화성탐사선이 보여준 화성의 모습을 보여주었을때 필자는 단박에 이 생명넘치는 지구의 우리가 얼마나 기가막힌가를 바로 알 수 있다.

 

 기나긴 시간과 공간을 이해하면 곧바로 놀라움이 당신의 머리에 넘치게 되리라 확신한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인데도 일상의 삶을 사는 인간에게 본능적으로 지금 이 순간에 더 특이한 것에만 주목하도록 만든다. 그것이 삶을 효율적으로 사는 생물학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광범위한 시간과 공간 속의 이 특별함에 대해서 끊임없이 무감각하게 된다. 그러나 위의 책들을 보면 지금 여기와 이 순간이 얼마나 의외적인지 계속 상기시켜줄 것이다. 일상의 투쟁 속에서 지금만 살아가기 쉬운 우리들에게, 지구와 우주와 자연과 그리고 이 시대의 실제 모습을 배울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긴 시간과 거대한 공간과의 교감은 우리의 시야를 단지 현재의 급박한 몇가지 이슈에서 더 긴 관점에서 강건하게 만들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에 우리는 얼마나 번뇌하는가. 이 작은 파도가 마치 전체인 양 생각되어 휘둘릴 수 있는 마음을 다잡아 주고 더 중요한 것들에 집중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고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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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작동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