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양자 컴퓨터 등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책을 한권 추천해야되겠다. 그리고 오늘은 난수 발생기를 보자.
이 책에는 제일 마지막 편에 이해웅 교수님의 양자 정보 기술에 대한 일반인 강의가 나오는데, 국내에 연관 설명 중에 가장 쉬웠던 것 같다. 관련해서 조금더 상세히 공부해보겠다고 하시면 주저없이 처음 시작할 책으로 추천한다. 이곳의 많은 설명이 여기의 설명과 일치할것이라고 생각한다(영향을 많이 받았으니)
자 다시 난수로 돌아가보자. 난수(random)에 대해서 고민해봤다면 상당히 깊은 수준의 구현을 한 분들이겠다. 난수에 대한 폰 노이만의 글을 소개하면 "임의의 숫자들을 낳는 산술적 방법을 고찰하는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당연히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라는 말이 가장 인상적이다. 즉 사람이 만드는 난수는 모두 유사 난수(pseudo random number)이다. 애초에 순수한 랜덤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방식을 알고 똑같은 조건만 갖추면 유추가 가능해버린다.
또한 완벽한 난수는, 무한히 많이 반복하면 이 세상의 모든 패턴이 고른 확률로 나와야 한다. 기억하는 설명 중 하나는, 알파벳을 나열하는 완벽한 난수는 결국 '무한히' 반복하는 와중에 셰익스피어 소설도 나와야한다. 절대 나오지 않으면 완벽한 난수가 아니다.
그러면 왜 양자와 난수가 연관되어 있을까?
정답은 그냥 양자를 측정하면 그 자체가 난수 생성과 같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자연을 해킹해서 얻은 순수 난수이겠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관측되서 나올 값이 예측 가능하다면 애초부터 코펜하겐 학파의 이론들은 무너져 내린다. 그냥 쉽게 생각해보면 광자 생성한 후 측정해보면 된다(광자에서는 편광을 이용하면 된다.). 하나씩 측정하지 않고 무더기로 측정해도 평균을 내면 될테니 결 잃음을 우려할만큼 어렵지 않아 보인다. 큰 자리수의 난수가 필요하면 반복해서 측정하거나 여러 개를 한꺼번에 측정하면 된다.
작은 칩 형태까지 만들었다고 홍보하는 것을 보면 여러가지 조건을 잘 튜닝해서 편중되지 않게 하기는 쉽지 않으나 일정 수준 상용화에 큰 무리가 있는것 같지는 않다(양자 컴퓨터와 비교해보면 매우 좋은 상황이라고 유추해볼 수 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성능좋은 유사난수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는 어렵지 않나 예측해본다. 현실적으로 유사 난수라고 해도 해킹을 하기는 매우 어렵다. 방법을 완전히 안다고 해도 같은 조건을 만들기 어렵다. 상대방 서버를 해킹해야 같은 조건을 만들 수 있는데 그게 사실 어렵다. 밀리세컨드 이하의 시간을 seed로 삼으면 대체 어떻게 알아낼 수 있단 말인가.
아마 당분간은 이 양자난수의 효용성은 성능좋은 유사난수를 가격대비 성능에서 앞지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여하튼 간에 그래도 폰 노이만의 고민 하나는 해결한 셈이다. 혹은 향후 다뤄볼 양자 암호 통신에서 같이 결합해 쓰면 더 이론적으로 완벽하겠다. 그야말로 이론적으로 해킹할 수 없는 체계가 탄생한다. (참고로 지금의 공인인증서 등 RSA 암호 체계는 컴퓨팅 파워가 충분히 크면 뚫린다)
앞서 중첩이란 것이 입자가 관측되면, 기존의 확률로 설명되던 것에서 벗어나, 실제로 확정되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이를 파동함수의 붕괴라고도 표현하는데, 이것을 인정하게 되면 또하나의 재미있는 상황을 상정할 수 있다.
두개의 입자를, 관측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서로 연관되게 만들 수 있다. 이를테면 특정 입자가 붕괴하면 양전자와 전자로 나뉘는데 이 둘은 각각 반대의 스핀을 갖게 된다(전자의 스핀이라는 것은 신기하게도 두 방향만 존재한다고 한다. 그리고 양자역학적인 속성을 지닌다. 즉, 관측 전에는 확정되지 않는다. 관측되기 전이기는 한데 둘이 반대라는 것은 확실하다. 왜 반대여야만 하느냐? 각운동량 보존의 법칙이라고 해두자.) 그러면 이렇게 얽힌 양전자와 전자를 각기 우주의 반대편으로 보내자. 생각하기 좋게 설명하자면, 딱 쪼개져서 양쪽으로 날아갔다고 치자.
이 두 입자는 생겨난 이후 관측된 적이 없기 때문에 확률로만 정의되는 녀석들이다. 그렇게 한참을 날아가서 우주 반대편에 닿았다고 치자. 이제 A를 관측해보자. 그러면 관측했으니 스핀이 결정된다. 엇 그런데 그 반대편에 있는 입자 B는 아직 측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은 한쪽을 측정했으므로 그 스핀의 방향을 알게된 것이고 자동적으로 그 반대편 입자 B의 스핀(A와 반대방향)도 알게된다. 즉 한쪽 A에 대한 측정이 다른 반대편 B를 확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전에 했던 이중슬릿 실험으로 돌아가보자. 광자 두개가 얽힌 상태에서 역시 우주의 반대편으로 보낸 후 각기 이중슬릿 실험을 한다고 치자. 그러면 우주 한쪽에서 A광자를 측정하기 위해 관측장치를 달아서 켜면 우주 다른 쪽에서의 광자가 갑자기 같이 확정된다. A광자쪽 관측장치를 끄면 다시 B광자쪽는 확률로만 존재하게 된다. B광자 쪽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이것은 무언가 광속을 넘어 두 입자가 통신을 하는 것처럼, 즉시 한쪽의 관측이 나머지 한쪽을 확정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지적은 1935년에 EPR 패러독스(아인슈타인/포돌스키/로젠 3사람이 쓴 논문이라 각각 이름을 따서 EPR이라고 한다)의 비유이다. 이것은 사실은 관측이 실재를 확정한다는 코펜하겐 해석을 반박하기 위한 지적이었고, 아인슈타인은 이를 원격 유령 행동(spooky action at a distance)이라고 비난했다고 한다.
말도 안된다는 이야기이지 않는가. 더욱이 이것은 본인이 확립한 일반상대론의 세계, 즉 광속불변의 법칙으로 모든 시공간이 광속의 제약을 받는 세상에서, 광속을 넘어서는 것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으로서는 더욱 자존심이 상하는 이야기다. 내가 많이 기여해서 낳은 양자역학인데 상대론과 모순되는 것들이 등장하게 된 셈이다.
지금이야 여러가지 실험이 진행되었지만, 당시에는 이런 일련의 것들이 여건상 실험적으로 증명되기 어려웠다. 거의 모두 머리 속으로 하는 사고 실험으로 진행된 정도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최근의 실험에서는 위 지적이 모두 코펜하겐 학파/양자역학에서의 승리로 밝혀졌다. 아인슈타인이 조롱하면서 예측한 것들이 실제로 그렇게 재현된다는 것이다.
2000년대에 국내 신문기사를 통해 광속을 넘어서는 정보 전달이 확인되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바로 위 확인에 대한 실험 소개이다. 정말로 광속을 넘어 두 얽힌 입자는 한쪽이 관측되면 확정된다. 다만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은 이것이 그렇다고 정보를 광속을 넘어 전달하는 것과는 다르다. 실제로 이 얽힘 현상을 이용해서 몇가지 응용이 가능한데, 양자를 순간 이동하는게 가능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양자가 순간이동을 해도 정보를 광속을 넘어 전달할 수는 없다. 결론적으로는 정보를 전달하려면 광속의 제한을 받는 통신이 한번 더 이루어져야 한다(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을 기약해두자)
여기까지 읽고, 이것이 만약 사실이라면, 우주는 엉망진창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여기서 번쩍 저기서 번쩍하며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저 얽힘에 대한 사고 실험은 가히 그 끝판 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주 반대쪽에서 확정된다니 이건 또 무엇인가.
이 타이밍에서, 벨 부등식을 소개해보자. 벨 부등식은 매우 어려우나 간단히 설명된 문헌을 소개해본다.
앞뒤에 각각 -1, 1의 쌍을 적어놓은 종이를 반대로 찢어서 멀리가져가 관측할때의 상황을 빗대는 이 실험에서는 이렇게 종이가 미리 적혀져서 이동되었는지 아니면 내가 관측할때 즉시 확정되는지의 차이에 따른 통계적인 수치 차이를 증명해낸다. 그렇다. 안에 법칙이 숨겨져있는지 그런것 없이 즉시 한쪽이 결정되면 다른 쪽이 결정되는지를 실험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기본을 제공한다.
즉, 존 스튜어트 벨이 만든 벨 부등식(1964년)은 코펜하겐 해석에 의하지 않고 양자에 어떤 숨은 인과의 이론(locality)이 존재한다면 통계적으로 지켜져야할 부등식이다. 놀랍지 않은가. 그 자연 법칙이 뭐든지 상관없다. 양자역학의 세계가 코펜하겐 해석이 아니라 우리가 뭔가 현재는 모를 어떤 상식적인 숨겨진 법칙이 있다면 통계적으로 만족해야할 부등식을 만들어 낸 셈이다.
결과는? 오래 걸리긴 했지만 알랑 아스페 연구팀이 편광된 광자로 벨의 부등식이 만족되지 않음을 보였다(1982년). 정말로 자연은 코펜하겐 학파의 해석대로 움직여왔고 지금도 그러한 것이다. 그리고 또하나, 얽힌 상태의 두 입자의 확정이 광속을 넘어서는 것도 실험적으로 증명되었다. 이것들이 지금의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이루어졌다. 아인슈타인은 불행히도 벨 부등식도 몰랐고 이것들이 실험적으로 증명된 것도 몰랐다. 우리가 몹시 부러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반복된 실험에도 이 증명들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한다. 결국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말이 여전히 유효한것 같은 상황은, 자연의 상상력을 인간이 뛰어넘지 못했을 뿐인 셈이다.
자 이제부터 빛을 가지고 풀어보는 양자와 연관된 개념들을 파헤쳐보자. 중첩(super position)의 개념이다.
양자 역학의 다양한 이론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특정 실험의 결과와 이에 대한 해석을 계속 내 의견과 같이 섞어가며 확인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피상적이지 않기 위해서), 이 실험의 결과의 가장 중요한 대상이 바로 이중슬릿 실험이다.
토마스 영의 이중 슬릿 실험(1801년)은 빛이 입자로 여겨지던 상황에서 파동으로 확정되는(당시 기준으로)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는데, 아래 그림이 가장 간단한 설명이다.
https://curiosity.com/topics/the-double-slit-experiment-cracked-reality-wide-open-curiosity/ 에서 발췌
왼쪽에서 빛을 쏴서 얇은 두 틈(double slit)을 지나게 하면, 물의 파동과 같이 스크린에 저런 회절무늬가 나타난다. 물결을 자세히 관찰해본사람이라면 저렇게 되겠구나 싶을 것이다.
그런데 빛이 입자라면 어떨까? 아래의 그림에서 오른쪽에 있는 것처럼 두 줄이 나와야 한다. 왜냐하면 말 그대로 직진하는 입자이기 때문이다. 곧장 얇은 틈으로 날아가서 분명하게 두개의 영역에만 표시된다. 뭔가 슬릿에 반사되는것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으나 그 모양도 물결무늬와는 거리가 있다. 그저 두개의 밝은 영역과 나머지 어두운 영역이 되어야만 한다.
http://www.liquidgravity.nz/DoubleSlitExperiment.html 에서 발췌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왜 저런 토마스 영의 실험결과를 알면서도 왜 광자가 입자라고 주장했을까? 아인슈타인은 사실은 광전효과라는 현상을 수학적으로 명확히 정리했는데, 금속에 빛을 쪼였을때 당시의 플랑크의 양자가설을 적용하여 실험결과와 같은 계산값을 내는 이론을 만들었고 그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그에 계산에 따르면 빛은 띄엄띄엄한 값을 지니는 입자여야만 했다. 그리고 그 가설은 실험결과와 정확히 일치했다.
빛이 입자라는 관점에서 위의 이중슬릿 실험을 다시 검토해보자. 이런 의심이 있을 수 있다. 혹시 빛이 여러 입자 다발이라서 저런 현상이 되는 것이 아닌가? 슬릿 벽에 반사도 되면서? 이에 어떤 과학자는 광자를 거의 하나 정도가 되는 정도로 매우 약하게 쏴 보았다(하나씩 하나씩 며칠을 노출시켜서 관찰하면 된다고 한다). 그런데도 회절무늬가 나타나는데, 이건 뭔가 이상하다. 아니 분명히 입자를 한개씩 쐈는데 왜 물결처럼 보이지?
하나의 입자를 쏘면 뒤에 각 슬릿의 뒤에 두줄만(각각 슬릿을 통과한) 나타나야 정상이 아닌가? 왜 이것이 마치 온 도처에 존재하듯이 보이는 것일까? (그리고 파동 계산에 의하여 그 회절 무늬는 정확히 예측이 가능하다. 양자역학의 상황이다) 왜 입자가 파동처럼 보이는 것일까?
그런데, 또다른 관전 포인트는, 이렇듯 영의 이중슬릿 실험에서도 앞서 소개했던 입자처럼 보이는, 그냥 두 줄로 보이게 할 수 있다는 방법이 있다는 점이다. 바로 광자를 쏘면서, 과연 실제로 어느 슬릿을 통과하는지 검출하기 위한 센서를 슬릿에 설치하면, 놀랍게도 그렇게 보인다고 한다. 이것을 설명한 것이 사실은 위 그림의 오른쪽 사진이다. 그렇다. 심지어 저 센서를 슬릿 중 한군데만 설치해도 마찬가지다. 누가 관측하면(?이라는 표현은 나중에 좀 다듬어 보자) 빛은 갑자기 파동의 성질에서 입자의 성질로 바뀐다. 이게 빛이 입자와 파동을 왔다갔다 하는 이유다. 관측 당하지 않은 광자만 파동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양자 역학의 핵심인 중첩에 대한 이야기다. 관측 당하기 전에는 여러가지 상태를 동시에 갖고 있는 파동의 모습이 된다.
왜 대체 결국에는(관측될때는) 입자이면서 관측하지 않을때는 파동의 성질을 지니는 것일까? 정확히는 왜 파동방정식에 의해서 기술될 수 있을까? 그리고 관측되면 또 일상적인 입자처럼 행동하는 것일까?
여하튼 여러가지 노력끝에 이를 잘 설명할 수 있는 방정식은 다 나온상태에서, 모두들 일단 실험결과와 들어 맞는 수식은 어떻게든 만들어 놓은 상황에서, 이 해석을 놓고 그 유명한 솔베이 회의(5차)에서 코펜하겐 학파와 아인슈타인(그 당시 이미 어마어마한 거장이 되어 기념사진 한가운데 앉을 정도의 위치에 있었던)이 논쟁을 벌인다. 너무나 많은 물리학 책에서 인용되는 그 거물들의 세미나 기념 사진의 그 현장이다. 노벨상 수상자가 가득한 그 사진.
여기서 아인슈타인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논쟁 끝에 보어학파가 전반적으로 다수에게 인정받는다고 한다. 어떤 책에 의하면 이미 거의 인정 받았는데 이외로 아인슈타인외 몇몇 거장들이 반발했던 모양새이다. 그러나 그러한 반발도 분위기를 역전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여하튼 이들의 해석 중 여기서 다룰 중요한 내용이 아래이다.
그렇다 양자는 쳐다보기 전에는 이 세상에 확률적으로 존재한다. 여기는 이만큼 큰 확률로 저기에는 좀 작은 확률로 전체에 존재한다. 아직 쳐다보기 전까지는 확정되지는 않을 것이고, 구름처럼 존재할 확률(?)만 가지다가 쳐다보면 갑자기 그 확률에 따라 존재가 나타난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조금더 자세히 설명하면 무려 빛의 속도를 넘어 '순간적'으로 확정된다. 우주 전체에 걸쳐 존재할 확률을 가지고 있다가(물론 막힌 터널을 통과하는 형세라면 그 경로에 관측될 확률이 크겠지만) 관측 그 순간에 특정 지점에 나타난다.(이것을 확률함수 붕괴라고도 표현한다.)
이중 슬릿 실험으로 돌아가보자. 관측하지 않을때는 광자의 존재는 확률로서만 나타내진다. 이것이 바로 파동처럼 행동하는 근본 원인이다. 단 하나의 광자라도, 확률로만 존재하다가 뒤 벽에 나타날때 비로소 그 확률에 따라 확정되어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 입자인 광자가 회절무늬를 내는 이유다. 분명히 구별되어야 하는 것은 실제 존재하는데 우리가 잘 모르다가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확률로만 존재하다가 실제 관측하면 비로소 실존한다.
그런데 이런 슬릿에 측정장치를 달면, 벌써부터 확정되어 버리기 때문에 이미 정해진 입자로서 행동하게 된다. 빛은 원자에서 전자의 에너지 준위가 낮아지면서 방출되는데, 이 녀석은 측정되기 전까지 확률로만 존재하다 측정되는 순간 실제 확정되어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모두 측정되어 버리도록 이중슬릿에서 지나갈때 관측을 하게 되면, 모두 입자로 측정되면서 더이상 벽에는 회절무늬를 보이지 않게 된다.
이렇게 측정되기 전에 입자가 확률로 존재하는 상태를 중첩(superposition)이라고 한다. 향후에 양자컴퓨터를 설명할때 기본 개념이 된다.
파동방정식(저러한 해석을 모른체 만들어지고 실험으로 증명된)에 대한 이런 해석은 막스 보른(Born, 1926년)이 최초였다고 전해지는데, 이런 설명을 앞서 밝힌 대로 아인슈타인이 위 솔베이 회의에서 극렬히 반대했다. 입자가 어떻게 확률로 존재하느냐에 대한 도전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좀더 보조 설명이 필요하다. 과학에서의 인과 관계에 대한 집착은 사실 꽤 유래가 있는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라는 큰 업적이 바로 뉴튼의 중력을 깔끔하게 설명한 것에 있다. 뉴튼이 처음 중력을 제안했을때 본인 스스로도 의심한 것은, 중력이라는 것이 원격으로 작용하는 힘이라는 사실이다. 사실은 직관과 크게 위배된다. 연결되어 당긴 것도 아닌데, 원격으로 작용하는 힘이라니, 기괴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자석이 서로 원거리에서 끌어당기는게 어렸을때 신기한 기억은 누구나 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통해 공간이 휜다고 설명함으로써, 이 원격의 힘을 그 메카니즘이 완전하도록 바꾸어놓았다. 원격의 이상한 힘 같은 것은 없다. 공간이 휘어지니 당연히 어느쪽으로인가 기울어지고 이것이 인력으로 보인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양자역학이 또다시 과학을 이렇게 또 당혹스럽게 만들었으니 답답하기도 했을 것이고 궁극의 답변도 아니라고 생각했을것이다.
여하튼 이러한 인과성을 국소성(locality)이라고 해서 또다른, 무언가 매개를 통한 인과성으로 우주가 움직여야 서로 모순없이 작동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동료들과 이 양자역학에 대한 다양한 반박을 내놓았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것이 양자역학을 더 풍부하게 만들게 된다. 그리고 또 등장하는 개념은
바로 얽힘(entanglement)이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이 얽힘이야기를 해보자.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이 주사위 놀위에 대해 반대했던 슈뢰딩거의 고양이 역설(1935년)을 잠깐 짚고 넘어가보자. 가장 논란의 큰 축은 우리 사는 세상은 양자역학처럼 저렇게 확률로 존재하지 않고 그냥 실제하는데, 어디까지가 양자역학적 세계이고 어디까지가 우리가 사는 세계이냐는 물음이다. 미시적인 세계에서는 그렇게 이상하다 치고, 우리가 사는 거시세계는 그렇지 않지 않은가? 즉 관측을 통해서 확정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냐는 이야기이다. 거시세계와 미시세계의 괴리 중간쯤이 있지 않을까?
양자의 상태에 따라 독을 퍼트리는 상자안에 고양이를 넣고 상자를 닿으면, 상자를 열기 전까지(관측하기 전까지)는 이 고양이는 산것도 죽은 것도 아닌 그런 상태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뚜껑을 열었을때 이미 죽어있거나 살아있는 고양이를 만나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역설의 해소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바로 안톤 차일링거 교수의 C60(퓰러렌) 을 통한 이중슬릿 실험이다. 이중 슬릿 실험을 광자가 아니라 C60이라는 큰 탄소 분자로 실험한 것이다. 어떻게? 매우 낮은 온도와 진공상태에서 가능하다. 그리고 온도가 올라갈수록, 진공을 잃을 수록 회절무늬는 점점 사라지게 된다. 거시세계의 입자들은 끊임없이 다른 입자들과 상호작용하거나 복사열을 내뿜어 자기 위치를 들키기 때문에 확정되어 보이게 된다는 설명이다. 흔히 말하는 결잃음(decoherence)이다.
결국 위의 설명대로면, 관측이 되지 않는다라는 것은 우주의 어떤 것에 의해서도 들켜서는 안된다는 관념이다.
누구라도 상관없다. 그 입자의 위치를 어느 다른 것이든 알게되면 그것이 관측이다.
내 상상속에서의 설명은, 우주라는 컴퓨터가 양자의 존재를 탐지해야하는 순간에는, 그 이전에 아무리 메타 정보(확률)를 가지고 처리되다가도 실제 좌표(확률 붕괴)정리를 하고 넘어가야하는게 아닌가 싶다. 컴퓨터 게임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은 계산(렌더링)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 뭐 그런 일종이라고 볼 수는 없을까?
다음의 얽힘에 대한 설명전에, 위의 확률붕괴와 또 거론되는 불확정성의 원리도 짚고 넘어가보자.
앞서 소개했지만 이 불확정성의 원리는 위치와 운동량이 동시에 확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하나가 더 확실해지면 하나가 더 불확실해진다. 이를 위의 이중슬릿실험을 좀 빌려와보자.
여기서는 슬릿을 하나만 남기고 대신에 이 슬릿의 간격을 계속 줄여가면서(특정 크기 이하라는 단서를 달아야 한다. 상당히 크면 우리 상식대로 작동한다) 실험하면 어떤 모양이 나타날까? 물론 회절 모양은 사라진 상태인데, 이번에는 얼마나 퍼져서 나오는가하는 문제이다. 어떨까?
일반 상식에는 슬릿이 모양이 좁으면 더 좁게 퍼져야 하고 슬릿의 모양이 넓으면 넓게 퍼져야 한다. 그런데 그 반대이다. 슬릿의 간격이 어느 크기 이하로 좁아지게 되면(빛의 파장과 관계가 있다) 뒤에 더 넓게 퍼지는 그림이 나타난다. 아래 두개의 분포를 보자. 슬릿 구멍을 지나 벽에 새겨진 밝음의 정도라고 생각해보자. 슬릿이 더 좁아질수록 주황색으로 나타난다.
왜 슬릿이 좁으면 상식과 다르게 주황색의 더 퍼진 모양으로 나타날까? 불확정성의 원리 때문이다. 위치가 점점더 명확해지기 때문에 운동량이 불확실해진다. 그래서 더 넓게 튕겨나가는것처럼 보인다. 불확정성의 원리도 그냥 관측이 불가하다거나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물리학적인 특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통과되는 공간이 좁아지면(위치가 더 확정되면 확정될수록) 그 다음에는 어디로 튈지 모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