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수학2022. 5. 7. 20:55

이 글은 아래 기록에 따른다. 이미지를 발췌하였다.

 https://pointatinfinityblog.wordpress.com/2016/04/07/aristotles-wheel-galileo-and-the-jesuits/ 

 

Aristotle’s Wheel, Galileo, and the Jesuits

Today, we look at another classical paradox: Aristotle’s wheel. The paradox was introduced in the text Mechanica, attributed, not without controversy, to Aristotle. It runs as follows. Consid…

pointatinfinityblog.wordpress.com

 

여러 방송매체에서 다뤄왔듯이 원통을 굴리는 실험을 해보면 생각보다 신기한 일이 펼쳐진다.

 

위 사이트에서 발췌했다

재미있는 것은 분명히 서로 다른 지름을 가진 두원이 지나왔는데, 빨간색의 두 직선처럼 길이가 같아진다. 그리고 더 흥미로운 사실은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저기에 빨간 줄은 없지만, 이 원통의 중심이 이동하는 궤적이다. 이 원통의 중심은 원도 아니고 점이다. 엄밀히 말하면 지름이 0인 원이라서 둘레의 길이가 없는데, 결과적으로 직선이 만들어진다.

 

이것은 마치 점으로 선분을 만드는 것과 같다. 이와 비슷한 일이 바로 제논의 역설과 같다. 거북을 따라잡는 아킬레스는 늘 거북이와의 절반의 점을 지나야 하는데, 절반을 가도 또 절반이 남고, 또 절반이 남기 때문에 무한이 많은 점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결국 거북이 보다 훨씬 빠른 아킬레스도 거북을 따라 잡을 수 없다는 역설이다. 사실 이 역설과 위의 둘레가 0인 점이 직선을 만드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런 역설들은 무한대와 무한소가 서로를 상쇄하는 형태로 해소된다. 서로 다른 두개의 무한이 서로를 상쇄하여 결국은 유한한 무언가로 바뀌게 된다. 두개의 서로 다른 지름의 원도, 동일한 길이의 직선에 모든 점이 대응될 수 있다. 아킬레스는 거북을 따라 잡을 수 있다. 그리고 위 원통도 현실에 볼 수 있듯이 수학적으로 명확하게 둘레가 0인 이 점이 직선을 이룰 수 있다. 두개가 달라보여도 서로 1:1로 대응해서 넘어서면 그만이다. 만약에 자연이 실수로 이루어져있다면 0과 1 사이의 실수나 0과 2사이의 실수가 같다는 것을(두개가 1:1로 대응 가능한 무한이라는 점을), 수학은 그림으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멋지지 않은가? 눈으로 봐도 칸토어의 시도가 곧바로 보인다.그리고 그것이 증명되어야 위 원통이 굴러가지 않겠는가? 위 0~1 사이의 모든 실수와 0~2사이의 모든 실수에 대한 간단한 1:1 매핑 방법은 독자들을 위해서 남겨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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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작동미학
순수수학2022. 5. 7. 20:11

 칸토어의 무한에 대한 이해의 극적인 점은 1:1 대응하는 두가지 무한한 집합이 동등하다는 점이다. 예를들면 그가 증명했던 것처럼 유리수와 자연수는 1:1로 대응된다는 점에서 정보로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것은 프로그래머가 흔히 다루는 코드 체계와 같다. 1,2,3,4에 어떤 글자가 대응이 되겠지만, 컴퓨터가 내부에서 처리할때는 사실 1,2,3,4라는 번호만 보일 뿐이다. 그것을 개별 글자로 인지하는 것은 단지 그것을 매핑해서 화면에 뿌릴 뿐이고, 사람이 각 글자를 그렇게 해석하면 그만이다.

 

https://www.storyofmathematics.com/19th_cantor.html

 즉 자연수와 유리수는 근본적으로 동일한 코드체계로 설명된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지만 동일하다.

 

 튜링이 만든 튜링머신도 마찬가지다. 매우 달라보이지만, 그것은 모든 것을 계산할 수 있는 현대의 컴퓨터와 사실은 동일하다. 현대의 컴퓨터가 더 많은 기능을 갖고 있는것 같지만, 계산 능력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 오히려 이런 것들은 가장 최소화하여 본질을 설명하는 것으로 축소 시키면 이론적으로 다루기가 쉬워진다. 과연 계산이라는 면에서 컴퓨터를 튜링머신보다 더 단순화할 수 있을까?

 

 존 콘웨이의 Life Game인 자기 복제하는 생명체가 어떤 단순한 법칙의 반복에서도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놀라운 존재이다. 그것은 복잡해보이는 자연의 법칙을, 몇가지 게임의 법칙에 대응시키고, 그 법칙이 반복되었을때 무언가 복제되어 유지되는 존재가 나타남을 보여주었다. 어느 정도의 구조여야 자연을 실제로 닮는 "계"가 탄생하는지 등등은 조금더 생각해볼 일이지만, 콘웨이는 Life Game이 자연과 대략 동등하게 해석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aSFL7PXj15M 

 강화학습이 유행하면서, 그리고 오래전에 인공생명이 논의될때 적절한 시뮬레이터에서 지속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화시키면 지능같은데 나오지 않겠느냐고 고민했던 시절이 있다. 그 시절의 고민은 과연 그 시뮬레이터를 얼마나 단순하게 만들어도 지능이 등장하는가였다. 아직도 이 질문에는 여러가지 기술적인 문제들이 있지만, 이론적으로 어느 정도의 시뮬레이터로 보상이나 벌칙을 주면 결국에는 지능같은 것이 나타날지가 보여질 수 있다면 꽤 가치있는 연구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처럼 수학에는 두가지 다른 것을 같게 만들거나 단순하게 만드는 작업들이 많은 혁신을 이루게 함을 알 수 있다. 어찌보면 게임 속 세상이나 현실이나 일정한 법칙하에 살아가는 것은 동등하니 둘이 별로 다르지 않다는 해석도, 매트릭스와 현실을 구별하지 않는 영화 속 상황도, 우리네 이성이 이런 동일성에 대한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서로 달라보이지만 결국에는 같은 것들을 합쳐나가는 노력이 세상을 다른 시야에서 볼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될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다시 처음 논의로 돌아가보면, 이 과정은 칸토어의 1:1 대응에 대한 증명이 나는 가장 큰 아이디어가 되지 않을까 싶다. 불필요한 것들은 제거하고 1:1로 대응되면 같은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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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작동미학
양자역학2022. 5. 7. 15:45

 사람은 매일 두 눈으로 빛을 통해 세상을 본다. 그래서 누구나에게 친숙한 것 같은 "빛"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뉴튼 시대부터 지금까지 인류에게 가장 미스테리한 존재 중에 하나였고, 지금도 인간 상상력의 한계를 매번 확장해가는 매개체이다.

  그래서, 호기심이 강한 자라면 "빛"에 대해 궁금하고 파고들었을때 비로소 자신의 상상력을 시험해 볼 수 있다. 먼 과거로 올라가서 물리학을 선도하고 싶었다면, 이 빛을 연구하는 것이 지름길이다. 뉴튼이나 토마스 영(Thomas Young)이 이 빛을 관찰함으로 인해 현대과학의 여러가지를 열어간 점이 인상적이지 않는가?
 
 빛에 의해 그림자가 생겼을때 왜 물체와 가까운 곳의 그림자는 그 경계가 진하고, 멀어질수록 경계가 흐릿한가. 왜 김이 서린 안경으로 밝은 등불을 바라 보면 둥근 모양의 달무리 같은 무늬가 생기는가. 비누방울에는 어째서 무지개 빛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 같은가. 왜 빛은 그렇게 속도가 그렇게 빠른지 등등 여러가지 흥미로운 점이 가득하다.
 이 빛이 해석하기 쉽지 않으면서도, 어찌보면 친숙한 이유는 그것이 그저 우리 눈에 보이기 때문이겠다. 생명이 생존하기 위해서 빛을 감지할 수 있게 되어 버렸는데, 빛이 에너지와 정보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받다보니, 빛의 활용이 생명에는 중요했고 결과적으로 그것을 감지하는 도구를 갖게 되었다. 간혹 지자기를 느끼는 생명체가 있기도 했지만, 빛을 감지하는 종의 수는 그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대부분의 생명은 빛에 반응하게 된다. 빛은 에너지이고 또한 살아남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정보의 전달자이기 때문이다.
 빛이 제공하는 정보는 실로 다양하고 즉시성이 강하다. 어디서든 생긴 빛은 매우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고 그다지 손상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감각 기관의 장애 중에서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 생존에 가장 불리하다. 그리고 이는 외계인이어도 마찬가지일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러다보니 빛을 숭상하는 이유도, 여러가지 신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도 납득할 수 있다. 에너지이자 중요한 정보의 원천이다. 그래서 태초에 빛이 있었으리라!
 
 현대의 천문학을 잠깐 살펴보자면 사실상 광학이 제일 중요하다. 천체의 정보라는 것은 밤하늘에 보이는, 별에서 출발한 빛의 모음이다. 이 별의 빛을 해석하는 학문이 천문학 아니겠는가.
 
 밤하늘에는 이렇게 전 우주의 정보가 쏟아진다. 광케이블로 빛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빛이 이렇게 멀리까지 빠르게 최소의 에너지로 정보를 실어나르는 속성 때문이다. 저 우주의 끝에서 출발한 빛 광자는 나이도 먹지 않고 별 손실도 없이 우리에게 까지 도달하지 않는가. 순수한 에너지의 형태로.

<우주가 시작된 후로 태어나서 곧바로 지구에 도착한 빛들?>

 그리고 그 빛은 뉴튼을 거쳐 토마스 영이 실험했듯이 입자도 아닌 것이 파동도 아닌 광자라는 양자이다. 그 덕에 양자 컴퓨터나 양자 암호에서도 다뤄진다. 빛은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라 외부에서 보기에 시간이 흐르지 않는것도 신기하다. 밖에서 보기에는 광속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흐르지 않으므로 이렇게 태어나자마자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존재이다.
 
 사진을 좋아하는가? 망원경을 좋아하는가? 색을 좋아하는가? 눈에도 보이는 이 낯익으면서도 사실은 곱씹으면 한없이 낯선 빛.. 한 밤중에는 온 우주의 모든 시간대의 정보를 가득 쏟아내는 이 빛. 양자적인 특성을 지닌 이 빛. 호기심을 가진 자에게 최고의 도전이 아닌가!
 
 그리고 이 오묘한 존재는 자연계에서 찾은 수학의 무한에 걸쳐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밝혔듯이 광속으로 달리면 밖에서 보기에는 그 존재는 시간이 가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이 유추한 방정식에 의하면 그렇게 광속으로 움직이는 존재는 시간이 정지한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광속으로 달리는 존재에게도 다른 빛은 광속으로 보이게 된다. 밖에서 보면 같은 속도로 출발하는 두 빛의 광자가, 한 광자의 입장에서 보면 다른 광자가 또한 빛의 속도로 가는 셈이다. 무한이 아니고서는 이런 일을 벌일 수가 없다.
 
 
 현대 물리학의 방정식이 예측하는 이 모양새는 고전역학적인 감각을 가진 우리에게는 당혹스럽다. 어떻게 광속은 불변이 되는 것인가. 결국 리처드파인만이 양자역학에 대해 언급했던 것과 같은 결론이다. 세상은 방정식에 따라 맞춰 돌아갈뿐인데, 인간의 빈약한 상상력은 이를 따라갈 수가 없다. 그래서 물리학자들은 세상을 정보와 그 변화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빅뱅이 일어나고, 빛이 생겨나서 광속으로 달려나간다. 그리고 그 빛의 관점에서 우주는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끝에 이른다(끝이 있다면) 생겨나마자 끝에 다다른다. 달리 말하면 빛이란 것은 현실에 사는 우리에게는 우주의 시간을 찰나로 보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사람으로서는 이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가 없다. 이렇게 빛은 영원히 살며, 이 우주의 영원한 존재를 훔쳐보는 학문이 천문학이다. 우주에 대한 정보를 가득 담고 있기 때문이다.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에 닿은 존재도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해서 닿으면 닿을수록 엄청난 속도로 시간이 빨리 흐르는 우주를 당면하게 된다. 좀 극적으로 표현하면 빛과 마찬가지로 밖에서 보기에는 영원히 사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이것을 무한으로 설명하면 빛이라는 영원을 사는 존재에게 이 우주의 시간은 선분의 점과 같은 존재다. 우주는 점이 되고 이 우주가 무한이 있어야 빛에게는 시간이 흐르는게 아닌가.

 

 그리고 또하나 빅뱅과 함께 탄생해 우주의 팽창과 함께 어딘가로 뻗어나가는 것으로 추정한 최초의 빛들도 미스테리다.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진공속에서 어딘가로 향하는 빛들 말이다. 양자역학의 원리에 따라 측정되지 않으면 그녀석들은 아직도 확률로 존재하고 더군다나 어디 닿을 일도 없이 뻗어나가고 있겠다. 대체 그것들은 또 영원 속에서 무엇일까. 시간이 흐르지도 않았으면서 영원히 확정되지 않을테고, 그래서 영원히 확률로만 존재하는 빛(광자)이 존재한다는 것이 현대 물리학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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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작동미학